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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담합의 시대에 태양을 그리워하다.

정 용 철(서강대학교 교수, 체육시민연대 전문위원)


밤새 눈이 꽤 내렸다. 새벽녘 온통 은빛으로 변한 세상을 향해 오랜만에 도시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도시는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아름답게 반짝거리던 것이 금세 질척거리는 검정색 흉물이 되어 길 가는 사람들은 혹 옷에 튈 까 종종 걸음을 치고 있다. 지난 4월에 우리가 그랬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정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온 국민은 금빛에 취해 잠시나마 행복했고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자랑스럽게 반짝이던 금메달은 밤새 내렸던 눈처럼 질척거리는 검정색 흉물이 되고 말았다. 이정수가 대표선발전 당시 곽윤기 등의 도움을 받았다는 일명 ‘이정수 사건’이 사실로 드러났고 빙상연맹은 해당 선수와 코치들을 징계하고 재발방지책으로 타임레이스를 적용하는 등, 담합 논란을 잠재우려고 했었다. 마치 검게 변한 눈을 치우듯이 길옆으로 싹싹 밀어버리고는 검은 흉물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단단하게 굳은 담합이라는 검은 흉물은 우리 곁에 여전히 머물고 있었다. 경찰은 지난 23일 성남시장배 전국남녀 중고교 쇼트트랙 대회에서 고3 제자들이 입상할 수 있도록 경기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13명의 코치를 불구속 입건하고 국가대표 출신 코치 1명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직적으로 계획되어 배신을 대비해 ‘비밀유지각서’까지 받았다는 스포츠 담합의 현실을 앞에 두고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게 오히려 슬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데 하물며 나라의 대표선수를 뽑는 선발전에서 담합이 이루어졌다면 그 보다 더 어린 중고등학생들의 대회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론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리는 자리에서 회유와 겁박 그리고 담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등수에 들어갈 세 명을 정해놓고 1, 2, 3등을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번 사건에 연루된 코치, 학부모, 그리고 어린 선수들에게 애처로운 마음까지 든다. 열심히 노력해서 기른 실력을 고작 가위바위보로 결정짓는 그 자리에 선 어린 선수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순위를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면 그나마 공정하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에 공정한 반칙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로써 우리나라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더러운’ 방법으로 1등이 되는 세상으로 전이되고 말았다. 기실 이번 사태는 몰지각한 몇 몇 코치들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지상주의, 내 자식, 내 제자를 위해 불법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묻지마 온정주의, 그리고 1등을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주의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회풍조가 버무려져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세태 속에서 상식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길옆에 쌓여 있는 검은 눈들이 없어지는 근본적인 방법은 세상이 따뜻해지고 태양이 제자리를 찾아 그것들을 녹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월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다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 이 더러운 눈의 찌꺼기 다 녹여버리기까진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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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 코치가 구속된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90년대부터 엘리트 선수 생활을 하고 2003년에 지도자로 전향한 그는 2005년 행인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뒤 달아난 뺑소니 혐의와 3번의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것을 지도자 결격사유로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2022년 8월, 그는 자신의 미성년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