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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언제 잘릴지 모를 코치라서 죄송합니다" - 오광진 집행위원

2010-06-23 프레시안

스포츠 스타는 언제나 빛이 난다. 누구나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극적인 헤딩골을 기억하며, 김연아의 환상적인 연기를 추억한다. 누군가는 차범근과 박찬호로 대표되는 선수들이 얼마나 국위를 선양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며, 박세리의 '맨발 투혼'이 외환위기 당시 한국인들의 마음에 큰 위안을 줬노라고 눈시울을 붉힌다. 그러나, 당연하겠지만 모든 선수들이 빛나는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성공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운동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평생 한 우물만을 판 장인이지만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한국 스포츠의 뿌리이자 기둥이라고 할만한 학원 체육 코치들이 대표격이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지만 바로 일년 후를 기약할 수 없는 '잊혀진 비정규직'이다. 언제까지 희생을 '스승의 눈물겨운 사랑'으로 낭만화시켜 '제2의 박태환', '제2의 김연아'를 노래해야 하는지, 이들은 온 몸으로 되묻고 있다. <편집자> 김영호(31, 가명) 씨는 중학교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이 기숙사를 쓰는 사람은 김 씨와 이 학교 체조부 학생 13명이 전부다. 김 씨는 지난 2008년 말 한 지역 도시의 중학교 체조부 코치로 부임했다. 1년 단위 계약직이다. 약 20여 년 전 처음 체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미래가 이토록 불안해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김 코치가 체조를 처음 접한 때는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인 1992년. 학교에 체조부가 막 생긴 즈음이었다. "학교에는 마루, 안마만 있었어요. 그렇게 반년을 했는데 인근 큰 도시에 있는 중학교 선생님이 절 눈여겨보시고 스카우트를 권유했어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소질이 금세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교 2학년 때는 전국체전에 출전해 주종목인 링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링과 평행봉 부문에서는 그래도 전국 톱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대학 진학을 두고 문제가 생겼다. 그는 체육교육학과가 있는 국립대로 진학하길 원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국제 대회에 나갈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체육교사직을 꿈꾸는 게 당연했다. 실제 지역의 이름난 명문 국립대에서 직접 입학 권유도 왔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사립대 진학을 원했다. 사립대로 진학한다면 체육교사의 꿈은 접어야 했다. 고민하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팀에서 일년을 보낸 후 결국 서울의 사립대 경영학과생으로 진학하게 됐다. 체육대학원까지 나온다면 임용고시를 볼 자격이 주어진다는 소식에 마음을 돌려먹었다. 그러나 3학년에 진학하자 체육교육과를 나온 사람만 임용고시를 볼 수 있도록 규정이 개정돼 버렸다. 결국 정교사의 꿈을 포기해야했다. 선수로서 살아남는 것만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답안지였다. 온 몸으로 익힌 선후배 관계 대학에 오자 고교 때보다 한 시간 이른 아침 6시부터 훈련이 시작됐다. 24시간 합숙을 하며 하루 9시간 가까이 훈련이 이어지 일상이었다. 훈련은 충실히 소화했지만 예년만큼 실력이 붙지 않았다. 어릴 때보다 훨씬 강해진 기강도 운동에 정을 떼게 했다. "1학년 때였는데 3학년 선배가 신용카드를 만들어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선배가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내 이름으로 만든 카드도 활용하려는 심산이었죠. 안 한다고 하니 그 뒤로 계속 갈구는데(괴롭히는데), 미치는 줄 알았죠. 이것 말고도 별의별 일 다 있었어요. 하루는 4학년 선배가 화장실휴지를 안 들고 가서 '휴지 갖고 오라'고 시켰는데 아무도 못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 죄로 전원이 외출 금지되고, 두들겨 맞고…. 그때는 그게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도 그가 의지할 곳은 운동 밖에 없었다. 2003년, 학교 졸업 후 그는 명문 실업팀에 입단하게 됐다. 계약금 2000만 원에 연봉 3000만 원이 계약 조건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가보니 사정이 달랐다. 1년 계약에 계약금은 없었고, 연봉도 2000만 원에 불과했다. 중학교 때 감독이었던 이 실업팀 감독의 말만 믿고 계약 조건을 따져보지 않은 게 실수였다. 선후배 기강과 은사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게 운동선수들의 세계다. 속았다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저임금 비정규직으로서 삶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미 마음은 선수로서 끝을 고했다. 성적이 나오지 않자 다음해 연봉은 1200만 원으로 깎였다. 팀에서는 '올해도 성적이 안 나오면 계약을 해지할 것'이라는 압박이 노골적으로 들어왔다. 2004년, 김 씨는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다행히 지역 초등학교 코치로 부임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역시 1년 계약직이었다. 월급 120만 원에 수당은 없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처지였다.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코치직이 어려운 건 아니었으나 역시 은사와의 관계가 다시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중학교 때 코치님과 일 문제로 불화가 생겼어요. 제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는데, 소문이 안 좋게 나면서 제가 나쁜 놈이 돼 버렸죠. 어차피 계속 얼굴을 봐야할 사람들인데 그렇게 인상이 안 좋아졌으니…. 바로 코치직 그만두고 형이 사는 구미로 갔어요. 현실은 어렵고, 고등학교 때 운동 말고 공부한 친구들이 잘 나가는 모습을 보니 억울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 많이 했죠."

▲학생 때부터 운동에 온 몸을 바친 선수들은 운동 외에 기댈 곳이 없다. 대학 진학, 명문 클럽 입단 등 모든 조건은 '운동 성적 지상주의'로 평가된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사진은 본문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음). ⓒ뉴시스

갈 곳은 없었다


공장에 가서 생산직 노동자로 새 인생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들은 '학벌이 너무 좋다' '운동했다니 부담스럽다' 는 따위였다. 힘겹게 찾아낸 일이 신발 가게의 점원이었다. 늦었지만 세상을 공부하라는 형의 권유로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 전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알 이유도 없었다. 한 때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으나 서서히 아픔은 회복돼 갔다. 그러나 운동선수로 살다 생긴 한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저 놈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한 무식한 놈이다' 이런 말 듣기 정말 싫었어요. 어릴 때도 애들 공부하는 것 보면 근처에서 책 보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했죠. 그런데 막상 새 인생을 찾으려고 해보니 이미 너무 때가 늦은 것 같더라고요. 대학에 가야 뭔가 할 수 있겠는데 학비는 비싸고, 돈은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코치 말고는 할 게 없더라고요."


마침 대학 때 친구가 중학교에서 코치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의 권유로 지금의 직장을 얻게 됐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자부심은 크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선생님이 아니라 코치일 뿐이다. 성적이 안 나오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주말이고 명절이고, 시합이 있다면 그는 무조건 일해야 한다. 그래도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다. 그의 자리를 대체할 '전직 체조선수'는 전국에 넘쳐난다. 언젠가는 그가 가르친 제자가 그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그는 감독이 될 수 없다. 감독은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맡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역할은 그가 도맡지만, 그는 코치일 뿐이다.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유도 불안한 미래 때문이다. 언제 체조부가 사라질지, 해임될지 알 수 없는 생활이다. 한 푼이라도 더 모으자는 생각으로 그는 학교 기숙사에서 버틴다.


"나이 마흔, 쉰이 돼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가 제일 걱정돼요. 저랑 같이 운동한 애들 중에 그나마 전 잘 풀린 건지도 몰라요. 친구 하나는 지금 공사판 나가요. 그나마 운동하는 내 제자들이라도 잘 되면 좋겠는데, 얘들도 어렴풋이 알아요. '운동 열심히 해야지' 하면 '저 깡패할 거예요' 이런 대답 돌아와요. 답답한데, 혼내는 것 말곤 달리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죄송한 인생


대도시의 모 사립 고등학교 레슬링부 코치로 재직 중인 박현수(33, 가명) 씨의 사정 또한 김 코치와 비슷하다. 스승의 부탁으로 안정된 직장까지 포기하고 다시 레슬링 세계로 발을 들였으나 하루하루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그가 받는 월급은 120만 원가량. 대도시에서 가장의 역할을 다하기엔 힘든 수준이다. 임신 9개월인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없으면 저축은 물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도 쉽지 않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면 당장 들어갈 돈이 부족한 게 요즘 가장 큰 걱정이다.


"산후조리원 하면 돈 많이 벌겠더라고요. 열흘 쉬는데 300만 원을 달래요. 돈을 마련하려고 보니 이미 마이너스 통장도 꽉 찼고, 아내는 백만 원만 구해오라고 하고…. 일단 동료 코치한테 돈을 꾸기로 했어요. 가끔은 결혼한 것도 후회할 정도예요."


노동시간을 쉽게 계량화하기란 힘들지만, 그의 노동 강도는 결코 낮지 않다.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학교에 가장 먼저 출근한다. 대회를 앞두고 합숙에 들어간 아이들 14명을 깨워 훈련시키고, 수업에 들여보낸다. 훈련 후 일일이 간식을 챙겨주고,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그가 달려가 수습해야 한다. 상당수 아이가 편부, 편모 슬하에 있거나 가정 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부모, 형 노릇도 엄연히 인정받아야 할 그의 노동이다. 학교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며 정문을 잠그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다. 일개 운동부 코치가 아니라 학교의 살림꾼이나 마찬가지지만 알아주는 이는 없다.


박 코치는 그래도 이런 일은 보람이 있어 힘들지 않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워낙 안 좋은 일이 보도돼 운동부 코치는 기껏해야 폭력이나 휘두르고,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지는 게 그는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레슬링부 여학생 하나가 가출한 적이 있었어요. 걔를 찾느라고 구로구 전체를 한 달 동안 뒤졌어요. 그 때가 첫 아이 출산 직후였는데, 당연히 아내한테는 혼이 났죠. 그런데 어떡해요? 그 아이 신경써 줄 사람이 저 밖에 없어요. 선생님이 돌봐주겠어요, 부모가 돌봐주겠어요? 정작 힘이 빠지는 건 따로 있는데, 그렇게 찾아서 애 맘을 돌려먹게 하면 다시 부모가 찾아와서 흰소리를 해요.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죠."


그는 코치 일을 하면서 단 하루도 연차를 써본 적이 없다. 연차수당을 달라고 학교에 요구해보지도 않았다. 당장 학교에서 운동부를 없애거나, 다른 고분고분한 코치를 찾아 그의 자리를 대체하면 그만이다. 최소한의 직업 안정성이라도 보장되지 않으면 그의 생활 여건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가끔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술자리를 나누기도 한다. 한 동료의 말이 기가 막 혔다. "그 양반은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운동장쓰레기 줍는 거래요. 안 줍고 있으면 교장 선생님이 와서 '너 뭐하는 XX야'라고 화낸다는 거예요. 왜 다 같이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인데 누구는 욕먹고, 누구는 대충 해도 되는 건가요?"


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오전 훈련을 마치고 교정을 거닐고 있는데 교장이 대뜸 그에게 "오랜만에 보네. 얼굴 좀 비추지?"라고 했다. 일을 하지 않고 뭐하느냐는 압박이나 다름 아니었다. 마침 레슬링부의 존폐 여부가 도마에 오를 때였다. 억울했지만 "죄송합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잘못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존심마저 억누르게 했다.


설 자리를 만들어 달라


▲박찬호는 운동 선수로서 가장 큰 부를 이룬 성공모델의 대표격이다. 그러나 박찬호처럼 운동에 매진해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뉴시스인터뷰 내내 박 코치는 익명 보도를 부탁했다. 이런 일이 잘못 알려져서 학교의 보복이 올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과도한 요구를 원한 것도 아니다. '코치의 정규직화'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현재 학원 체육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한 요구"라며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대답했다.


"학교에서 체육 수업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 아닙니까? 안 그래도 코치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데, 코치 정규직화하면 우리 제자들이 설 자리가 사라집니다. 미국처럼 학원 스포츠를 크게 강화하고, 이를 코치에게 전담시키는 시스템부터 제대로 갖춰줬으면 좋겠어요."


실제 학원 스포츠의 위상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입시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면서 학교의 체육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작년 말 발표한 '2008년 서비스업 부문 통계조사'를 보면 일반입시학원 매출은 1년 전보다 13.1퍼센트(%) 늘어난 반면, 스포츠 학원 매출액은 7.1퍼센트 줄어들었다. 학원체육 정상화를 위해 소년체전이 사라졌고, 체력장 등의 점수는 대학 입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스포츠 수요가 줄어드니 코치들은 자연히 엘리트 스포츠 강화에 더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답이 없는 현실이다. 체육 코치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단체가 있지만 그들도 코치들의 전반적인 권익 신장과 같은 '과격한' 요구를 하진 않는다.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 코치 간 차별대우를 없애고, 줄어드는 소년체전 등을 다시 강화하자는 게 그들의 요구다.


이들에게 "엘리트 체육 인재 양성에만 몰두하는 현 풍토를 개선해 학원 스포츠를 정상화시키는 게 좋지 않으냐"고 물어봤으나 그들은 답변을 거부했다.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리가 없으며, 지금의 시스템이 유지돼야 그나마 있는 자리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깊숙이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일반 학생들에게 체육 수업을 강화시키자는 취지에는 대체로 동의하나, 체육 전문 학생이 학업도 병행함으로 인해 생기는 훈련량 저하를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볼모는 이렇게 현실 유지의 최전선에 선다.


박 코치와 인터뷰를 한 날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맞아 싸운 17일이었다. 인터뷰 말미 박 코치는 "오늘은 오후 훈련 대신 아이들 데리고 서울광장에 응원나가려고요. 아이들 거기서 어떻게 통제할지 걱정이네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코치라기보단 아이들의 부모에 오히려 더 가까워 보였다. 그는 삶을 내던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동물사육 체제를 유지해야 하나"


학원 스포츠의 병폐가 논란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때 뉴스로 끝나기만 했다. 메스를 가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엘리트 스포츠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리는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는 학생은 학업권마저 포기당하고 전적으로 운동에 매달린다. 학원 스포츠를 외국의 클럽 문화처럼 개혁하고, 대다수 학생들도 스포츠를 즐기는 생활 스포츠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으나 이를 현실화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현장의 반발이 극심하다. 성적 지상주의 풍토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체육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학생이 대학문턱을 넘을 거의 유일한 수단은 체육특기자 입학이나 스카우트다. 이는 전국 대회 수준급 실력이 입증돼야만 가능하다. 박 코치는 "결승에 올라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소외 종목의 경우 대다수 아이들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들이 그래도 대학이라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적"이라고 말했다.


학원 교육 현장에서 체벌과 집중훈련이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는데는 가장 효과적이라는 건 대부분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코치들은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 다음해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어떤 식으로든 성적을 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운동에만 모든 것을 '올인'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적지 않다. 학습권 침해를 넘어 비이성적인 선후배 문화가 생겨나는 게 대표적이다. 단체스포츠든 개인스포츠든, 이 과정에서 합숙은 여전히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실제 박 코치가 재직 중인 학교는 정문 바로 옆 수위실처럼 보이는 건물을 아이들의 합숙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합숙소 생활의 폐쇄적 공간이 비뚤어진 선후배 문화의 온상이 된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대를 물려 이어진다.


운동선수였던 오광진 한국재활복지대학 교수는 "엘리트 위주로만 학원 체육을 운영하다보니 선수 수급이 힘들어 전국적인 스카우트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 온 학생들을 재우기 위한 합숙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이 안에서 폭력적인 문화가 싹튼다"고 설명했다.


합숙소 문화는 부모와 일선 코치들과의 잘못된 연계를 낳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코치의 월급이 워낙 낮아 생기는 일이다. 오 교수는 "코치의 월급이 워낙 낮은데 학생 선수들은 많이 먹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학교에서 이런 돈을 지원해주지 않다보니 부모들이 돈을 모아 이 돈을 마련한다"며 "이 돈의 일부가 코치의 생활 지원비로 사용된다. 결국 코치는 돈을 많이 주는 부모의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코치들도 결국 폭력적인 학원 스포츠 문화의 희생양"이라며 "엘리트만을 대상으로 성적에 목매는 학원 스포츠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악순환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처럼 코치와 선수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24시간 내내 운동만 하는 것은 '동물사육'과 뭐가 다르냐"며 "이처럼 인간을 사육시켜서 엘리트 선수를 만들어놓고 그 선수가 실패할 경우 사회적으로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대안으로 "근본적으로는 일본이나 미국처럼 학원 스포츠 클럽을 활성화시키고 코치들에게 이들의 교육을 맡기는 구조가 자리잡아야 한다"며 "당장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겠으나 근본 구조 개혁 없이는 불행의 고리를 자를 수 없다"고 말했다.


당장 코치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정규직화가 어렵다면 최소 3~5년 정도의 장기계약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꾸고, 코치들의 자기계발과 교수능력 신장을 위한 재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학교체육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적이 있다. 최저학력제를 규정해 학생 운동 선수라도 일정 수준의 학력을 달성해야만 대회 출전이 가능토록 하고, 입시에만 목을 매는 다른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체육 활성화를 지자체 수준에서 본격화하자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 3월 3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학생 운동 선수들에게 공부를 시킬 경우 '제2, 제3의 김연아가 나올 수 없다'는 일부 국회의원의 입장이 나왔다. '제2의 김연아'를 보기 위해 다른 무수한 선수들의 미래를 짓밟아도 되는지, 나아가 이런 식의 교육만이 또 다른 김연아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 한국 사회의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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