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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가 구조적으로 키워온 ‘폭력’이라는 괴물

*이 글은 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 발간하는 서울스포츠 2020년 8월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체육계가 구조적으로 키워온 ‘폭력’이라는 괴물

글 / 허정훈


초·중·고, 대학, 직장 운동부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대물림되는 체육계 폭력 문화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의리의 카르텔로 뭉친 체육계의 폐쇄적 구조, 오랫동안 공고히 쌓아온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등은 ‘체육계 폭력’이라는 괴물을 거대하게 키워왔다. 선수, 부모, 지도자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던 괴물을 없애려면,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 구조를 해체하고 대한민국 스포츠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폭력의 일상화와 세습: 라떼는 말이야~


1980년대 초 군사정권 시절, 태권도 체육 특기자로 입학한 어느 중학생은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훈련했고,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구타와 원산폭격(머리 박기)을 당했다. 그는 1980년대 말 대학생이라는 자유를 느끼기도 전, 집합과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는 역설적인 ‘지성의 상아탑’에서 체육을 전공하게 된다. 그때는 이를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군사문화의 탓으로 돌릴 만했다.


2000년대 중반 그가 대학생을 가르치게 된 때 학생 선수들은 아직도 폭력적인 문화에 방치되었고 운동선수들의 인권침해는 일상이었다.


그즈음 강장호라는 대학 신입생이 신입생 훈련 중 가혹 행위로 인해 사망했고 몇년 후 어느 고등학교 야구선수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앳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직장 운동 부에서도 같은 사건이 반복되고 말았다.


스포츠계에서 폭력, 성폭력, 갑질과 인권침해는 일상적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실태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초·중·고 학생선수는 물론이고 성인이 된 대학생 선수, 직장 운동 선수들도 예외 없는 피해자였다는 점이다.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상상외로 높았고 매주, 매일같이 자주 발생했으며, 다양하고 광범위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요 가해자는 감독과 코치, 선배 선수였고, 가해는 연습장과 합숙소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 선수들은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용기를 내기 힘들었고 설사 용기를 냈다 하더라도 책임 있는 사람들은 가해자 편에 서있었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과 달라지지도 않았다. 이제 오래된 군사문화 탓도 못할 일인 것은 군대마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부 체육인들이 ‘나 때는 더 했어’라며 꺼내드는 ‘라떼 타령’은 더 할 말도 들을 말도 안 되고 위로도 못 된다. 그들은 방조자와 동조자의 그 어디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속에 나와 우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근본 원인은 재차 말하지만, 스포츠계 구조적 문제


스포츠계 폭력적 문화와 인권침해는 폐쇄적 구조에 기인한다. 섬에 갇힌 운동부는 감독, 시·도체육회, 연맹 등으로 이어지는 ‘같이 술 마시고 형님, 동생 하며 잘 지내는 의리의 카르텔 안’에서 맴맴 돈다. 제보가 있고 문제가 불거져도 재수 없는 사람만 꼬리가 잘린다. 가해자는 폭풍이 지나가면 곧 복귀하거나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가령 장애인체육회에서 폭력으로 제명당했는데 대한체육회 수영연맹의 지도자로 복귀를 했다거나 육상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은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체육계 성폭력 등을 저지른 범죄자 15명은 학교에서 운동부 지도자로 버젓이 근무하다 감사원에 적발되었다. 폐쇄적 구조가 그들을 만들고 그들은 그 폐쇄적 구조를 더 튼튼히 쌓았다.


스포츠계 폭력과 인권침해는 한 개인의 일탈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공고히 쌓아놓은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메달 경쟁, 체제 과시, 국위선양의 국가주의 엘리트 체육 정책이 낳고, 연금과 군 면제, 특기자 입학과 같은 자양분을 주고, 만분의 일도 못되는 성공만을 좇도록 환상을 심어주며 꾸준히 살려내 온 괴물이다.


선수들은 메달을 따야 연금과 군 면제 혜택을 얻을 수 있고, 성적을 내야 상급 학교로 진학한다. 이쯤 되면 부모들은 폭력과 성폭력의 고통을 감내하며 지옥같은 올가미를 쓸 수밖에 없다.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아무 일 없다는 듯 참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에겐 우승과 메달이 성과지표이고 여기에 재계약 성사 여부가 달려있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매달린다.


스포츠과학과 따뜻한 리더십으로 지도하라는 것은 한가로운 사람들의 말솜씨로 여겨지기 충분하다.


결코 합리화될 수 없지만 폭력과 갑질 등 인권침해의 가해자로 거의 절반이 넘는 지도자가 지목받은 이유, 즉 체육계 지도자들이 가해자거나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근본적 원인은 이 괴물같은 구조 속에 있다.


선수, 부모, 지도자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괴물,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 구조를 해체해야 하고 대한민국 스포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낡은 틀 걷어내고 스포츠 문화가 선진국인 나라로 U턴해야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의 선순환과 스포츠클럽 활성화가 대안이다. 스포츠 강국에서 벗어나 스포츠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체육계와 시민사회에서 이미 던졌던 화두이다.


이런 얘기라도 할라치면 곧이어 국민이 사랑했던 스타 선수들이 나서거나 그들을 내세워 ‘엘리트 체육 죽이기’라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장본인은 다름아닌 대한체육회와 시·도체육회, 각 종목별 연맹 또는 협회 등이다.


국민 세금 4천억 원을 쓰는 대한체육회와 국가 체육 예산의 세배쯤 되는 4조 원이 넘는 시민 세금을 쓰는 시· 도체육회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변화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 올림픽과 국제 스포츠 외교 업무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로 분리하고, 대한체육회는 학교·생활·엘리트 체육의 선순환과 스포츠클럽 활성화, 스포츠로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목적을 바로 잡고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매년 여는 전국체전 같은 엘리트 스포츠 경쟁시스템은 3~4년마다 바꿔 개최하고 대신에 전 연령대 종목별 스포츠클럽 대회는 시·도를 순환해서 시민들의 준비와 참여로 개최해도 좋다. 엘리트 경쟁 중심, 메달 중심, 성적 중심에서 시민 참여 중심으로 시·도체육회가 추구하는 가치도 변해야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돈 주고 선수 사고파는 소모적인 경쟁시스템을 위해 시민 세금을 축내야 하는가? 시·도체육회의 모든 에너지를 전국체전과 도민체전 등에 다 써버릴 것이 아니라 일상적, 대중적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스포츠 사업이 주가 되도록 체육회 통합정신을 찾아내야 한다. 이는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변의 선수들도 없는 비인기 엘리트 종목까지 살려내는 스포츠계 구조개혁임을 눈치채야 한다.


기득권과 오래된 카르텔로 막아서고 있는 구태의 사람들과 그들이 떠받치고 있는 낡은 엘리트 중심 스포츠 구조는 폭력, 성폭력, 갑질, 인권침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괴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쓴 허정훈은 ‘운동선수 자기관리’를 주제로 스포츠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 후 현재 중앙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와 서울시체육회 학교체육 위원장,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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