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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29371
    • 2월 3일
    • 2분 분량

요즘 ‘학생선수 학습권’에 관한 갑론을박으로 체육계가 시끄럽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한국 엘리트체육, 특기자제도의 특혜를 받고 선수 생활을 했고 국가 대표 출신으로서 국내외 지도자 생활을 거쳐 온 사람입니다.


저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지각하거나 수업 중간에 훈련하러 가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해 왔고, 어떤 의문을 품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어 선수촌에 입촌한 이후부터 학교 생활은 전혀 하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당시에는 학교 생활보다는 국가 대표, 국제 대회 메달, 올림픽 출전이 훨씬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인생 최고의 목표로 생각했습니다.

그 후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었지만, 지금도 학생 선수들의 생활은 저의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거의 모든 학생 선수들은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훈련에 매달려 살고 있고 어려서부터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만을 갖고 생활 중입니다.


물론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기 능력을 닦는 것은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선수들까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지나보니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 교우 관계 등 모든 것을 포기했더군요. 더구나 그 시기에 공교육을 통해 배워야 했던 필수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성인이 되어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부족한 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진로가 어려서부터 한 길로 정해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자라면서 여러 관심사가 생기고 여러 활동에 참여해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 학생 선수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진로가 한 길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학생 선수들은 모두 김연아, 손흥민 같은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선수가 되길 소망할 겁니다. 저 역시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는 정말 극소수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언젠가는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선수들이 대다수입니다. 그 많은 선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저 역시도 나이가 들어 기량이 전 같지 않아 23살에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그 또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취업을 하거나 그를 위한 배움에 힘쓸 때, 저는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동 말고 다른 일은 해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정보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어려서 학교생활도 하고 운동 이외의 삶도 누리고 있었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어려서부터 무한경쟁 사회에 던져진 학생 선수들은 친구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또래에 대해 평범하게 우정을 나누고 교류하는 대상이라기 보단 경쟁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인간관계를 맺어가며 사회성을 키워야 할 시기에 너무나 한정적인 관계만을 맺게 되고, ‘학생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또래 중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사회성 형성 시기에 길러져야 할 기본적인 사회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지요. 저 또한 자라면서 혼란을 겪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거기에 끊임없는 성적 비교.. 이 부분은 일반 학생들도 힘들어하는 부분이겠지만 선수들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길 뿐이기에 그 시합 성적에 모든 인생이 걸려 있습니다. 과열되는 경쟁과 성적에 대한 압박감.. 체육계에서 드러나는 여러 폭력 사건들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가치관이 정립되고 사회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있는 어린 학생 선수들에게 학교 수업과 운동의 병행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했더니, 혹자는 ‘시합 준비도 해야 하고 국제대회도 나가야 되는데 운동에 전념해야지 수업을 듣는 건 시간 낭비다. 게다가 운동도 힘든데 수업까지 들으라는 건 학생 선수 인권 침해다’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건 학생 선수들 아닌가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제가 살면서 겪어 온 시행착오와 충격을 지금의 학생 선수들이 조금은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학생 선수들이 부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학업과 운동을 행복하게 병행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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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29371
    • 1월 24일
    • 3분 분량

학생선수를 위한 길... 함께 고민해보시죠.

선수와 학생으로 살아온 교수와 학부모로 살고 있는 제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저는 3년간 수영선수, 11년간 농구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초, 중, 고, 대학까지 총 14년간 엘리트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운동만이 길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뛰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청소년 국가대표에도 선발됐고, 명문대에 입학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팀의 주장으로 역할 했습니다.


훌륭한 농구선수. 농구를 해서 돈을 벌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가능한 꿈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2002년 11월 24일. 왼쪽 무릎부상으로 운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초, 중, 고, 대 16년간 학생으로 살아왔지만, 학생으로 수업을 듣는 것은 녹록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의자는 차가웠고, 한국말로 하는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날 잘 대변해주던 수식어 ‘농구선수’는 숨기고 싶은 과거에 불과했습니다. 농구 이외에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선수로 살아온 11년. 난 농구만 할 수 있는,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생선수’에서 ‘선수’란 단어만 뺐을 뿐인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 것일까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학생선수 중도탈락, 운동부 문화, 학생선수 교육 등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참여했습니다. 학생선수, 은퇴선수, 운동부 중도탈락 학생, 부상선수, 여성선수...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나와 유사한 학업적, 관계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선수, 초보선수, 경력선수, 남성, 여성선수, 학생선수...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선수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규정하고 바라보고 육성하는 방식은 같습니다. 바로 ‘전문선수’입니다. 오직 전문선수 육성을 위해 이들이 지니는 다양성, 특이성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선수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많은 것을 강요합니다.


1972년 체육특기생제도의 도입으로 학생선수가 공부성적과는 상관없이 운동실적만으로 상급학교 진학이 가능해졌습니다. 국군체육부대, 군 면제, 포상금 등의 제도와 혜택이 추가됐습니다. ‘운동만’하면 돈, 명예, 상급학교 진학, 군 혜택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학생선수 대부분이 제2의 김연아, 류현진, 손흥민을 꿈꾸며 운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처럼 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운동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운동만 합니다. 운동만 해야 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학업과 운동병행은 대비적 관계가 아닙니다.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도 아닙니다. 학생답게 교육받을 권리인 학습권과 선수답게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는 운동권 모두 보장받아야 합니다.


스포츠혁신위 권고안의 취지와 학부모, 학생선수의 의견 모두 이해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학생선수의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학생선수 개인에게 귀결되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운동실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이 대부분 결정되는 체육특기생 대입 현실에 비춰볼 때 학부모와 학생선수의 반발은 예상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혁신위의 권고안은 현장에서 운동시간을 축소하고, 대회 개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동의할 수 없습니다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누적된 수업결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부를 해야하고(하지만 학업으로 상급학교 진학이 불가능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 상황(거의 유일한 상급학교 진학수단)입니다.


크게 두 가지 지원과 대안이 ‘주중대회금지’ ‘주말대회개최’권고와 함께 제시되어야 합니다.

첫째, 교육부의 역할입니다. 주중 대회 금지를 원칙으로 하더라도 일정 부분(이동 숙박 등으로 인한) 수업결손(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더라도)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맥락을 고려해서 권고안과 더불어, 정상적 시행을 위한 지원관련 내용을 추가했으면 좋겠습니다. e-school같이 관리도 없고, 연계성도 낮은 허울뿐인 제도 말고, 학생선수들의 수업결손을 보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력을 충원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학생선수를 관리의 대상이 아닌, 선수뿐만이 아닌 학생으로 인정하고, 두 가지 업을 병행하는 이들을 위해 이 들의 학업병행을 위한 인력을 배치하고 그들의 학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둘째, 대한체육회, 대학스포츠협의회, 학교체육진흥회 등 관리, 유관 부서의 역할입니다. 다양한 학생선수의 특성을 고려한 규정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선수가 안전하고 건강한 스포츠 참여를 할 수 있도록, 연령별, 학제별, 종목별 특성을 고려한 규정제정이 필요합니다. 건강하고 안전한 스포츠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올바른 ‘운동권’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 모든 내용(용어와 시기의 차이가 있습니다만)이 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에 포함되어있습니다. 어른으로, 선배로, 부모로, 지도자로 제시해야할 학생선수를 위한 길은 무엇일까요? 학생선수의 학업과 운동병행 문제를 절대 정치적 문제로 단기적 안목으로 판단하고 선동하거나 왜곡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학생선수’에겐 ‘학생’과 ‘선수’란 역할과 그에 따른 학업과 운동이란 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두 가지 신분과 업이 있기에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공부도 운동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합니다. 단기적 이익(성과)보다 중요한 장기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절대다수의 학생선수는 운동을 할 날보다 하지 않고 살아갈 날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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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29371
    • 2021년 7월 11일
    • 2분 분량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얼마 전,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스포츠분야 인권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느 분께서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라고 말씀을 하시며 제 옆을 지나가십니다. 마음은 무겁고 뒤통수는 뜨끈뜨끈하고 천근만근의 무게를 가슴에 얹고 돌아왔습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탁을 세탁기가 합니다. 세탁물을 옮기고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의 기능이 끝나면 꺼내서 널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반듯이 알아야 할 것은 그 세탁물의 주인이 누구이고, 세탁기 기능 외에 움직임을 하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탁물을 자신이 직접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거절을 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사람, 동의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없는 사람) 부탁을 가장해서, 시킨 것 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행위입니다.


부탁과 강제적 시킴의 행위 구분이 어려울까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떠하게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진행했던 ‘스포츠분야 인권교육’의 내용에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중 대학교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원하지 않는 각종 심부름, 빨래, 청소를 대신 한 적이 있다(29%),’, ‘부당하게 자유시간, 외출, 외박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26%)’,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25%) 순으로 빈번했음


- 생활통제의 가해자는 ‘심부름, 빨래 등’의 경우 선배가 주 가해자였으며, ‘자유 시간·외출·외박 제한, 헤어스타일 등 제한의 경우’ 코치가 주 가해자였음 」


국가인권위원회는 ‘자기결정권 제한 등 생활통제’로 명시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세탁물을 세탁하는 빨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쯤 학습하게 될까요?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부터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하는 지극히 사적인 일에 대해서 배우며 자랐습니다.

저는 ‘암묵적 위계구조, 그 닫혀진 섬’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기숙사에서 “타인의 빨래를 왜 내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는 성인이고 거절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절을 표현할 수 없는 관계,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문화,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분위기와 누군가 내게 계속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시켜도 말할 수 없고, 비동의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머물고 있는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통제하고 제한하면서 자신들의 지극히 사적인 일조차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게 말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기의 기능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아주 어린 영아기의 아동은 모르겠지만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도 알 수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어른, 무엇이 잘못이라고 꼬집어 이야기해야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세세하게 설명해야 알게 된다면, 어른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기 시작한 걸음마의 아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이라는 단어 속에서 그 하등의 쓸모 없는 노예적으로 사람을 부리려는 사람에 대한 존중 없는 사고가 인식이 그 닫혀 진 섬을 만들었고, 여전히 변화하고 싶지 않으려는 비인권적 행위입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그 모든 행위는 시키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로 바꾸어 말해야 합니다.


오늘도 저는, 스포츠현장이 성적만이 아니라 웃고 즐기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 땀에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는 인권이다’가 실현되길 바라며 스포츠분야의 인권교육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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